이국종-김종대 논란을 뒤늦게 보면서 기시감이 든다. 이교수는 그저 환자를 '집도' 대상으로서 건조하게 마주하고(그러나 그 신체에는 최대한의 성실성으로 마주하면서), 그렇게 신체가 하나의 신체일 수 밖에 없었던 시간에 본 일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때 파악된 언급된 기생충이니 분변이니 역시 신체에 부수된 건조한(신체적 의미만 갖는) 대상일 뿐이다.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사가 제출한 왜곡된 책 요약(악의적인 독해)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아래에 인용해 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책의 취지를 충분히 살펴 요약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가장 신경을 써서 독자의 오해가 없도록 쓴 부분에 관해 재판부는 검사가 멋대로 왜곡한 요약을 가져와 내가 한 말처럼 왜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판매자가 팔겠다고 내놓은 책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차마 구매하겠다는 댓글을 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꼼수를 생각해냈다. 판매자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메일 계정을 이용해서 책을 사겠다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판매자에게 금세 답장이 왔다. 그 책을 나에게 팔겠단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나를 기겁하게 했다. 팔긴 팔겠는데 혹시 저번에 본인이랑 댓글로 대판 싸운 '박 선생'이 아니냐고 물어왔다. 그뿐만 아니라 "저번에 나랑 싸운 뒤라 민망해서 다른 이메일 계정으로 연락한 것이 아니냐"라는 정확한 추측까지 덧붙였다. 나는 즉시 답장했다. "그때 그 사람이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난 당신과 처음 거래한다"라고 말이다.
형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저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군요. 아니, 오히려 법원이 말한 "틀린 표현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대부분 언론이 앞뒤 맥락 없이 인용한 탓에 오히려 법원이 나의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간주하면서도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한 것처럼 인식한 이들이 더 많아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가처분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가 진 이유를, 저는 명확하게 압니다. 달리 말하자면 형사소송에서 이긴 이유를 명확하게 압니다.
지식인들이 이 문제가 사법처리로 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진지하고 용기있게 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지식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주변인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평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무시전략을 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지식인들의 학문적 공론장 역할은 거의 하지를 못했고, 따라서 이번 사태가 사법처리로 이어진 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방기가 있었고 이것은 지식인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제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시도한 일은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말했으나 잊혔던 목소리를 그저 복원하고, 세상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내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목소리만이 진짜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둘러싼 일임에도 위안부문제가 당사자의 일부를 점점 제쳐놓고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게 된 분들의 목소리도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간의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 오로지 그것뿐이었습니다.
나의 책이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협력이나 자발성 자체를 강조해야 했기에 이번 공판은 특별히 마음이 무거운 자리였다. 나의 책은 그런 것을 강조하는 일 자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공방이란 책의 취지를 협애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물론 그것은 내가 시작한 사태는 아니다.
이 책은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단체를 비판한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고발된 이유다. 실제로 100곳 이상 지적된 곳 중 반 가까이가 정대협을 비판한 부분이다. 실제로, 가처분 재판에서 지적된 곳 중 3분의 1만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결방식을 20년 이상 주장해왔고 다른 방식도 있지 않을까라고 문제제기한 책을 고발한 것이다.
모든 학문은 사실 늘 가설일 뿐이다. 나의 책은 과거 20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정착된 '상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 생각한 '나의 진실'일 뿐이다. 공감해 주는 이들이 있을 경우 그 진실 공간이 넓어질 뿐. 검찰은 '가설'로서의 학술서에 대해 '사실'을 적시했다는 전제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설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내가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본적인 모순, 근본적인 뒤틀림. 학술서를 둘러싼 법정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내가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할 생각이었다면 왜 직설적으로 쓰지 않았겠는가? 원고와 검찰은 보이는 대로, 쓰여 있는 대로 읽지 않고, 의도를 의심하면서 상상을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왜 쓰여있지 않은 내용을 굳이 읽으려 하는가? 비판자들이 말하는 '정치적 의도'를 먼저 읽어내면서 그것을 위한 기술이라는 의심을 한 결과일 터인데, 그건 과거에 사상범을 잡아내면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자백하도록 만든 태도와 똑같지 않은가?
내 글은 '한겨레' 같은 신문으로 하여금 위안부 숫자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만들고,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거수기(擧手機)가 민족주의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겨레'가 같은 기사에 통상 20만 설이 아닌, 연구자가 최소치로 잡고 있는 '8만'이라고 썼다면 절독을 하겠다는 독자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 글은 그 딜레마를 말하고 있다. 위안부 연구자와 활동가, 위안부 연구자와 언론, 위안부 연구자와 대중 사이에는 소통되지 않은 차이(gap)가 있다. 내가 확인한 여러 위안부 문제 연구자의 연구 결과나 초점은 특히 대중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과거사 보도에서 '사실 경쟁'을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게 된 언론의 딜레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을 도구로 삼는 사회는 당연히 강자에게만 유리한데도, 국민의 다수는 먹고살기 위해 순응하고 동화된다.
『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동일한 서적'이 아니며, 바로 거기에 박유하의 간계가 숨어 있다는 식의 이런 음모론은 원래 이명원의 것이 아니라, 일본어판 출간 즉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박교수의 발언은, 그러한 사태에 대한 하나의 해석인 것이며, 여기에 대한 다른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석을 배제한 채 사실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박유하 교수는 개별 위안부 의식의 차원에서는 설사 동지적이었다 할지라도, 제국의 차원에서 그것은 엄연히 동원이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조선인 위안부라는 하나의 사태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